한국인의 밥상 - 666회 광복절 기획 한 끼 한끼가 눈물겹다 그녀들의 독립운동 밥상 심산 김창숙 며느리 손응교 도토리묵 육회 칼국수
주어진 고난속에서 스스로 강인한 삶을 선택한 독립운동가문의 여인들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가 아닌 여성독립투사로 살아온 그녀들의 전쟁과 같은 삶과 밥상인데요.
엄혹한 시대에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쉼 없이 싸운 독립투사들 그 영웅들의 뒤에는 그들을 뒷바라지하고 가족과 공동체를 결속시켜온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은 칼과 총으로만 한 게 아니었고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견디는 매 순가이 전쟁이었고 독립운동 가문의 여인들은 떄로는 강인하고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눈물겹게 희생하고 헌신하였는데요.
기꺼이 내 가족, 내 나라를 위해 그녀들만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매 순간이 전쟁터만큼이나 치열했던 그녀들의 삶과 밥상을 만나보겠습니다.
17살에 심산 김창숙의 며느리가 된 손응교씨! 심산 김창숙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 불렸던 유림의 거두로 독립선언물에 유림이 빠진 것을 치욕스럽게 여겼습니다.
이후 그는 나라를 구하지 않는 자는 거짓 선비라며 전국 유생들에게 서명을 받은 독립 청원서를 들고 중극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손응교 씨가 결혼한 당시 시아버지인 심산 김창숙은 6년째 옥살이 중이었는데요.
조선을 착취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에게 자금을 댄 혐의로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14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손응교 씨가 결혼한 다음 해 김장숙 지사는 모진 고문에 두 다리가 마비된 채 풀려났습니다.
18살의 어린 며느리는 그때부터 시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똥오줌을 받아내는 등 온갖 뒷수발을 드는 한편 시아버지의 독립운동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는데요.
김창숙 지사의 손여이자 손응교 씨의 딸인 김수 씨가 어머니의 애달픈 삶이 담긴 밥상을 차리는데요.
결혼 석 달만에야 어렵게 일제로부터 가족 면회를 허락받은 어머니 손응교 씨가 폐백 겸 옥바라지 음식으로 준비한 도토리묵이었는데 이 도토리 묵은 끝내 시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제 간수들이 도토리묵 속에 밀서라도 들었을까봐 묵을 쑤셔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혹독한 옥살이로 몸이 쇠약해져 소화마저 힘든 시아버지를 위해 매일 만들었다는 칼국수와 시아버지의 건강 회복을 위해 삯바느질을 해가며 차려냈다는 육회 등 시아버지를 잘 지키는 것이 집안과 나라를 위한 길이라 여겼던 손응교 씨의 독립운동 밥상이 눈물겹기만 한데요.
◈ 심산 김창숙 생가 -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 2길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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